본문 바로가기
ANIMATION/TV

타오르는 불꽃, 귀멸의 칼날 극장판 : 무한 열차

D 2021. 4. 10.

귀멸의 칼날 극장판
귀멸의 칼날 극장판

 

<귀멸의 칼날 : 무한 열차>는 1월에 개봉한 <귀멸의 칼날> 극장판으로 1기의 마지막 장면과 이어지는 내용으로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혈투를 다루고 있습니다. 2016년, 일본 만화 잡지 점프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귀멸의 칼날>은 2019년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현재는 극장판까지 개봉한 상태입니다. 현재 원작은 완결이 난 상태이며 애니메이션 또한 2기에서 모든 내용이 정리됩니다.

 

이전부터 관심 있었던 <귀멸의 칼날 : 무한 열차>는 제법 재미있었습니다. 뛰어난 영상미와 사운드의 조합이 일품인 작품입니다. TV판 애니메이션은 사람들이 극찬할 정도로 재미있지는 않았습니다만 <귀멸의 칼날 : 무한 열차>는 모든 면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습니다.

 

기본 토대가 되는 줄거리를 소개해 보자면 원작의 주인공인 카마도 탄지로는 숯을 팔아 가족을 부양하는 소년이었습니다. 평범하게만 살던 그는 어느 날 사람을 잡아먹는 혈귀에게 모든 가족을 잃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동생 또한 혈귀로 변하는 참극을 겪게 됩니다. 이후 동생을 원래 몸으로 돌리고자 혈귀와 맞서 싸우는 귀살대라는 조직에 들어가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이번에 개봉한 <귀멸의 칼날 : 무한 열차>의 주인공은 카마도 탄지로가 아닌 1기 마지막에 등장한 렌고쿠 쿄쥬로입니다. 귀살대는 여러 계급이 있는데 가장 높은 단계가 '주'입니다. 렌고쿠 쿄쥬로는 주의 한 사람으로 불꽃의 호흡을 사용하는 굉장한 실력자로 등장합니다.

 

첫 등장 때부터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어 앞으로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기대될 정도였는데 극장판 주인공으로 떡하니 등장하는 것을 보고 역시 범상치 않은 캐릭터였구나 했습니다. <귀멸의 칼날 : 무한 열차>를 시청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지금은 아주 거하게 뒤통수라도 맞은 기분입니다.

 

귀멸의 칼날
귀멸의 칼날

 

<귀멸의 칼날 : 무한 열차>에 메인으로 등장하는 혈귀는 사람의 꿈을 조종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는 달콤하고 기분 좋은 꿈을 선사한 뒤에 악몽을 보여주어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즐기는 킹 오브 변태입니다. 캐릭터 디자인도 비호감 요소를 잘 살렸는데 화려한 몸짓이나 중성적인 목소리, 고통을 미학으로 여기는 사고는 본 투 비 사이코패스를 떠올릴 만큼 사디스트적이고 골계적으로 등장합니다.

 

등장인물 중 몇은 달콤한 꿈을 얻고자 혈귀 편에 서서 사람을 공격하고 함정에 빠트립니다. 스스럼없이 타인을 죽음으로 몰고 가면서도 자신만 편해질 수 있다면 그만인 것입니다. 양심을 버린 자와 미처 지우지 못한 죄책감을 안은 자로 나뉘는 그들은 인간이 가진 본성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람은 이타심보다는 이기심에 지배당하기 쉽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귀멸의 칼날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애니메이션

 

후반에 이르러 혈귀는 죽음에 이르는데 지금까지 보았던 <귀멸의 칼날>과는 마무리가 달랐습니다. <귀멸의 칼날>에서는 본래 인간이었던 혈귀의 마지막을 아련하고 가슴 아프게 그려냅니다. 결국은 그들 또한 이었고, 원치 않게 혈귀가 되어 살고자 사람을 먹어야만 했음을 강조하는데 <귀멸의 칼날 : 무한 열차>에서 혈귀는 명실상부한 악으로 묘사됩니다.

 

몸이 재가 되어 사라지는 순간까지도 전부 남 탓으로 돌리며 자신을 죽인 탄지로에게 복수를 바라는 장면은 쓸데없이 감동 코드를 넣지 않아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귀멸의 칼날>을 보면 범죄자에게도 개연성을 부과하는 것처럼 불편한 느낌이 있었는데 <귀멸의 칼날 : 무한 열차>는 선과 악이 꽤 분명하였습니다.

 

카마도 탄지로
카마도 탄지로

 

전반적으로 재미있게 본 <귀멸의 칼날 : 무한 열차>지만 다소 억지스럽거나 개연성이 부족한 장면들도 더러 있어 아쉬움 또한 큽니다. TV 애니메이션으로 볼 때부터 느꼈던 억지스러운 끼워 맞추기 연출이 극장판에서도 또한 고스란히 반복되었습니다.

 

극장판 안에는 혈귀가 조종하는 잠에 빠지면 다시는 눈을 뜰 수 없다는 설정이 있습니다. 여기서 탄지로만이 각성 조건을 깨닫고 자력으로 이겨냅니다. 어쩔 줄 몰라하는 상황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혼이 등장해 답을 알려주는데 참으로 뜬금없었습니다. 따지고 싶은 점이 한 둘이 아닌데 그냥 '개연성은 개나 주었다'로 퉁치겠습니다.

 

이 외에도 탄지로가 주인공인 렌고쿠 쿄쥬로는 어떻게 눈을 뜬 것인지조차 설명되지 않고 한 술 더 떠 아가츠마 젠이츠는 잠에 빠진 상태로 공격을 감행합니다. 행동 이유는 첫눈에 반한 네즈코가 위험에 처해서입니다. 청각을 타고났다는 설정이 있으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지만 너무 끼워 맞췄다는 느낌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꿈을 조종하는 혈귀가 죽은 뒤 마지막에 이르러 새로운 적이 나타나는데 이 또한 너무 두서없었습니다.

 

렌고쿠 쿄쥬로
렌고쿠 쿄쥬로

 

모든 싸움이 끝난 뒤 혈귀 중에서도 선택받은 소수로 추앙받는 상현 그룹 중 하나가 주인공 일행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딱 엔딩이 나야 어울리는 대목에서 대뜸 보다 강한 적이 나타나 처음에는 후속 편을 예고하는 것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습니다. 렌고쿠 쿄쥬로를 죽이고 추후 탄지로의 각성을 예고하는 장치에 불과했습니다.

 

렌고쿠 쿄쥬로는 일회용이라고 하기에는 존재감이 지나치게 강했고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 또한 상당했습니다. 충분히 활약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가차 없이 죽여 버리는 작가의 머릿속이 실로 궁금해졌습니다. 차라리 원작에는 없는 극장판 용 캐릭터를 따로 만드는 편이 낫이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가장 어이없었던 것은 결말입니다. 렌고쿠 쿄쥬로는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혈귀를 몰아세웁니다. 고지가 코앞 이건만 탄지로의 동료인 시나즈가와 사네미가 재를 뿌려 두 번째 혈귀는 도망치고 렌고쿠 쿄쥬로만 죽음에 이릅니다. 그대로 두었다면 혈귀는 분명 죽었을 텐데 왜 도움을 가장해 팀킬을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후일을 기약하겠다는 의도는 알겠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코쥬로만 개죽음을 당한 꼴 아닙니까.

 

본인들의 판단으로 일을 그르쳤음에도 그놈의 감동 코드를 욱여넣어 투지를 다지고 혈귀를 향해 당당히 외치는 탄지로를 볼 땐 진심으로 제정신인가 싶었습니다. 사실은 소시오패스였다는 설정이었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렌고쿠 쿄쥬로였다면 다 된 밥에 포클레인으로 시멘트를 들이부은 격인 탄지로를 잡아 찢어 버리고 싶었을 겁니다.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넷플릭스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넷플릭스

 

디테일한 개연성은 아쉬움이 크나 그럼에도 <귀멸의 칼날 : 무한 열차>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뛰어난 CG와 완벽한 OST가 있어서입니다. 전투 장면에서 선보이는 기술들은 화려한 그래픽으로 도배를 하였는데 정말로 눈이 즐거웠습니다. 나아가 기술과 립싱크라도 한 것인지 OST 또한 싱크가 대박이었습니다.

 

기술이 시작되는 순간, 칼을 휘두르는 타이밍, 격돌하는 순간 등 세세한 타임라인까지 OST 싱크를 맞춘 애니메이션은 <귀멸의 칼날 : 무한 열차>가 처음이었습니다. 전투 장면이 분명함에도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듯한 연출에 몇 번이나 감탄했는지 모릅니다. 영상미로 판단한다면 <귀멸의 칼날 : 무한 열차>는 상당히 볼만 한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최소한 감상 도중 심심할 일은 없습니다.

댓글